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공군 (문단 편집) === 창군 이전 === >'''비행기(飛行機)를 이용(理用)하여 인심(人心)을 격발(擊發)케 하고 또(又)는 장래(將來) 국내(國內)의 [[독립운동|대폭발(大爆發)]]을 촉기(促起)하려 함이라.'''[* 괄호 안의 한자는 원래 일기에 적혀있던 글이다.] >---- >― 안창호, 1920년 2월 17일 일기. 이 글귀 하나로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. 한국사에서 처음 공군을 고안한 인물은 [[일제강점기]]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[[안창호|도산 안창호]]이다. 그는 1920년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비행대를 구성하는 계획을 세워 항공기와 조종사를 모두 확보하려 하였는데, 당대 다른 열강에서도 실제로 비행기가 전투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[[제1차 세계대전]] 전후[* 최초로 군에 항공대가 구성된 것은 1909년(오스만 제국 육군)과 1910년(프랑스 육군)이며, 처음으로 전투에 투입된 것은 1911-12년의 [[이탈리아-튀르크 전쟁]]이다.]로, 식민지의 사정에 비추어 선구자적인 발상이었다. 비록 사정상 항공기 구입에 실패했지만, 중국 군벌의 비행 학교에서 위탁 교육으로라도 조종사를 양성하고자 노력한 바 있다. [[https://m.blog.naver.com/PostView.nhn?blogId=afzine&logNo=90193938314&proxyReferer=https:%2F%2Fwww.google.com%2F|#]] 실제로 다수의 항공기들을 확보하여 독립 운동을 시작한 사례는 [[대한제국군]] 장교 출신의 [[독립운동가]] [[노백린]]이 1920년대에 미국에서 세운 '윌로우스 비행학교'를 시초로 보고 있다. 이 비행학교는 대홍수로 인한 자금 문제로 1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지만 이 외에도 여러 조종사들이 세계 각국에서 복무하여[* 주로 중화민국과 일본 육군에서 복무했다.] 비행 능력과 공군 장교로서의 능력을 키워오고 있었으며, 이들의 노력은 [[1948년]] [[5월 5일]] [[조선경비대]] [[육군 항공대|항공부대]]가 창설되었고, [[1949년]] [[6월 28일]] [[대한민국 육군본부]] 항공국이 설치되었으며, 그 뒤 [[10월 1일]]에 대통령령 제254호 '[[대한민국 공군본부|공군본부]] 직제'에 따라 1,600여 명의 병력과 20대의 L-형 항공기를 가지고 육군으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인 공군이 창설됨으로서 결실을 맺는다. 육군에선 독립을 내켜 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나, [[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]] [[손원일]] [[제독]] 등의 지지와 항공대 창설 멤버들의 의지 등에 힘입어 독립에 성공한다.[* 비슷한 시기에 미 육군 항공대 역시 미 육군에서 독립하여 미 공군이 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